생모 원망하지 않는다, 훌륭하게 성장하게 돼서 꼭 보고싶다
소피(강선애), 한국 3번째 방문 꼭 생모 찾아고 싶고 또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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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전 강선애씨의 어릴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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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저출산과 초고령화로 국가 위기론에 당면해 있다. 심지어 노후 연금수령까지 저출산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70~80년대는 한입을 덜고자 머나먼 타국으로 핏 덩이를 입양을 보내던 시설이 있었다. 이 시기에 수천명의 아이들이 타국으로 보내졌다.
83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독일 가정으로 소피 선 베터(강선애)는 입양이 되었으며, 불행중 다행으로 양부모는 소피(강선애)를 평범한 가정의 일원으로 받아 주었으며, 심지어 오빠와 언니 또한 역시 입양아였다. 더욱이 5살 위 오빠는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였다. 양부모는 세자녀 모두 입양을 했지만 가슴으로 모두를 올 곧게 성장시켰다고 한다.
기억조차 없지만 4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생부모를 찾아 보겠다는 맘으로 한국을 방문 하지 않았지만 입양 당시 이름과 태어난 병원이 ‘포항선린병원’이라는 정보만을 알게 된 후 우연한 기회로 경주를 찾아와 인근지역에 포항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홀트아동복지에 남겨진 실마리를 토대로 선린병원을 방문해 수소문 했지만 대한민국 사회 역시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해 생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파출소직원과 그리고 동사무소 직원들의 노력으로 당시 생모 이름과 주소지를 수소문해 연락이 닿았지만 생모의 반응은 냉소 했다며 희미한 기억을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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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애씨가 모국을 방문해 나들이 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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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추정해 보자면 생모의 나이는 46세로 추정하고 실제 한 가정의 엄마로 그리고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아 가고 있는 가정에 20년 전 친딸이 찾아 왔다고 하면 그 누가 반길수 있겠는가?
사연이야 들어보지 못 했지만, 그 부모 고통역시 이루 말할수 있겠는가? 적어도 그 생모 역시 딸의 얼굴은 보고 싶었는지 당시 동사무소 직원의 말을 빌리자면 전화 상으로 생모는 “ 얼굴은 함 보고 확인을 하고 싶다”고해서 당시 생모가 일러준 카센터 인근으로 찾아가 두 모녀는 상봉을 하게 되었지만 그 생모는 머뭇거리면서 딸의 얼굴을 보고는 “내 딸이 아니다, 난 상꺼풀도 있지만 이 애는 상거풀이 없다” 생모와 친 언니로 보이는 두 사람은 소피(강선애)를 두로 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고 소피(강선애)는 헛 웃음을 보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소피(강선애)는 당시를 회상하며 동사무소 직원이 소피(강선애) 어릴적 사진과 생모 그리고 친언니의 동사무소 보관된 자료를 살펴봐서 가족임을 확신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설득을 해보라고 했지만 그들은 소피(강선애)를 두고 매몰차게 발걸음 돌렸다고 한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 소피(강선애)는 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소피(강선애) 나이 역시 어느듯 42세이다. 이제는 독일 남편과 직접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 했다고 한다. 그녀는 왜 생모를 찾고 싶은냐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자기 얼굴과 엄마가 닮은 구석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짧게 답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양부모역시 한국 생모를 찾는 것을 적극 찬성 했으며, 가족들은 모두 응원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이나 생모에 대한 원망이나 그리움에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현재 행복한 독일 가정에서 자라고 해서 생모에 대한 원망은 없다”고 말했으며, “생모를 만난다면 외려 그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혀 미안하게 생각 하지 않았음 한다, “감사합니다”라는 서툰 한국말로 그녀는 웃으며 답을 했다.
잛지만 정말 해 맑은 소피(강선애)는 몇일 후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얼굴에는 첫 만남부터 너무도 해 맑았으며, 인터뷰 내내 그녀는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단지 생모와 닮은 곳이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확인 해 보고 싶었하긴 했으나, 이 질문만큼에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한 모습에 코끗이 찡했다.